1980년대 암울했던 미국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집권 당시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누적되는 일명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다. 외국과의 무역은 계속 밑지는 거래를 했고 나라 살림은 들어오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는 총체적인 위기였다.
당시 미국은 경제문제뿐 아니라 각종 사회문제나 국제 관계에서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 했다. 사회양극화가 점점 심화되어 보건, 교육 분야에 빈곤층의 균등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기회와 자유의 땅 미국의 가치가 많이 퇴보 되었다. 또한 신흥 경제 강국들의 부상과 지구촌 곳곳에서 미국을 반대하는 분위기 확산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위기를 이야기 했다. 폴 케네디와 같은 학자는 ‘강대국의 흥망성쇠’라는 책을 저술하며 미국의 근본적인 위기를 진단하기도 했다.
코즈 마케팅의 물꼬를 튼 기업은 바로 미국의 신용카드 회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다. 1850년 뉴욕주 알바니에서 우편서비스 회사로 시작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미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인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여러 인연을 갖고 있었다. 1885년 프랑스로부터 선물 받은 자유의 여신상이 설립될 당시 아멕스는 여신상 받침돌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고 미국 독립 200주년이었던 1976년에는 자유여신상 기념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횃불을 치켜든 거대한 ‘자유의 여인상’이었다. 자유와 행복을 찾아 수만 리 물길을 헤쳐온 사람들에게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위풍당당하고 단호한 여인의 모습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징표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여신상은 자유의 나라, 이민의 나라 미국을 상징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유와 압제로부터의 해방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게 된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유의 여신상 보수’ 코즈 케팅 캠페인은 2003년에 2차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1년 9월 11일 9/11 사태 이후 자유의 여신상의 관람이 중지되었고 여신상의 노후화로 인해 수시로 건물 보수를 해야 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3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했고 2003년 12월 1일부터 2004년 1월 31일 가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이용하며 구매가 이루어 질 때마다 1센트씩 기부금을 적립해 총 250만 달러의 기부금을 조성했고 나머지 50만 달러는 직접 기부금을 모아 조성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자유의 여신상 보수 프로그램 이외에도 1992년부터 1996년까지 결식문제 해결을 돕는 카드 사용(Charge against hunger)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이는 매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쇼핑기간 중 아멕스 카드 이용 금액의 3%를 결식퇴치 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총 기부금액은 2천만 달러를 넘었다. 또 2001년 9/11 이후에는 뉴욕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재난기금을 설립하여 피해지역과 주민들을 돕는데 사용하기도 했고 침체된 뉴욕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종 지역 축제의 스폰서가 되기도 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사례에서 보듯 기업의 매출을 높이고 사회 문제 개선에 기여하는 이러한 코즈마케팅은 이제는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마케팅기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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