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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D 이후의 길, 한국형 기금으로 나아가자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나 통일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며, 그 목표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자체가 부족했다고 본다. 아마도 6월 이후에는 지난 3년간 쌓여온 일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통일 분야의 위축은 분명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통일을 지향하는 다양한 단체와 개인 간의 상호 이해와 존중은 정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는 이해관계자들 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소통이 필수적이다. 통일운동의 주체들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보거나, 정파적 프레임에 갇혀 단절되는 상황은 오히려 통일 담론의 생명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나 역시 통일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how to)’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며 실천으로 옮기고자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때때로 과장되게 포장되는 측면도 있다. 정치적 이익이나 예산에 기대어 휴머니스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북한 체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우리의 시각과 사고방식만으로 북한을 평가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도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들을 위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제기하기보다는, 민간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인권 담론이 형성되고 정부는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에 집중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균형이 바로 지속 가능한 통일 접근법이라고 본다.

 

NED(미국 민주주의 진흥재단)의 사업을 개별 사례로 살펴보면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북한 체제의 붕괴나 봉쇄를 유도하는 듯한 사업도 있는가 하면, 인적자원 개발, 교양 교육, 취업·창업 지원 등 비교적 부드러운 성격의 프로그램도 많다. 몇 년 전, 한 기관의 용역을 받아 NED의 전체 사업을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업부터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까지 그 폭이 넓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NED는 1984년부터 시작되어 2022년 기준 연간 예산이 약 **3억 달러(한화 약 4천억 원)**에 달하며, 전 세계 100여 개국 이상에서 시민사회 육성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순히 체제 전환이나 선거 지원만이 아니라, 언론, 인권, 교육, 직업훈련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는 한국도 ‘한국형 NED’, 다시 말해 한국형 민주주의·평화·개발기금(Korean Peace and Democracy Fund)을 구상할 때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은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오랜 기간 대북 인도적 지원과 통일 준비를 진행해 왔지만, 이를 구조화된 기금과 플랫폼 형태로 진화시키지 못했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1995년부터 운영해온 ‘남북협력기금’은 연평균 1조 원 내외의 예산이 책정되었지만, 대북 경색 시기에는 사용이 거의 되지 않거나 일회성 사업 위주로 편성되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4년 기준으로도 집행률이 30%대에 불과한 해가 많다.

 

반면, 한국이 자체 기금을 통해 남북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립적이고 시민친화적인 프로젝트를 확대해 나간다면, 국제사회와의 협업도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출신 청년의 사회 정착 지원, 북중 접경 지역 아동 교육, 탈북민 여성의 디지털 역량 강화, 한반도 평화 콘텐츠 개발, 탈북민과 남한 청년의 공동창업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국제기구나 외국 정부와도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가진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금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는 국제적 메시지이자, 지속가능한 대북 정책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향후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통합 비용을 사전에 분산하는 장치로도 활용될 수 있다.

 

앞으로는 한국의 고유한 가치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채널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쩌면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 NED 기금이 축소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한국의 가치를 글로벌 무대에서 자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