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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Study

광화문 교보문고, 그리고 ‘K-Culture’를 향한 시선들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서점 안을 천천히 거닐다가 자연스럽게 외국어로 한국을 소개하는 책들이 모여 있는 ‘Books on Korea’ 코너에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가 눈에 띄었다.

 

예전엔 주로 한국의 역사, 사회, 정치, 특히 북한의 정치·경제를 다룬 사회과학 중심의 영어 서적들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제는 K-culture와 K-food를 다룬 영어책들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BTS, 블랙핑크, K-드라마, 김치, 비빔밥, 떡볶이 등 한국 대중문화와 요리를 소개하는 책들이 한눈에 봐도 부쩍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흐름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첫째, 전 세계적으로 한류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음악,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한국의 음식, 전통문화, 심지어 일상생활까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둘째, AI 번역 기술의 발전으로 언어의 장벽이 낮아졌다. 예전에는 영어로 책을 출간하려면 전문가의 번역이 필수였지만, 이제는 AI 번역 도구를 활용해 비교적 쉽게 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맞춰 발행할 수 있다. 특히 요리책이나 대중문화 관련 콘텐츠는 텍스트 난이도가 비교적 낮기 때문에 AI 번역과 편집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요리와 대중문화는 한국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다. 직접 따라 해볼 수 있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으며, 한국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출판사들이 이 분야를 중심으로 영어판 서적을 기획·출간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배경 속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 소개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숨겨진 매력을 전 세계로 전하는 창구가 된 듯한 풍경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 소개를 넘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어떻게 전파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흐름 한가운데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K-pop과 한식 관련 서적들 사이에 이승만 대통령이 1941년 지은 『Japan Inside Out』이 함께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과 팽창주의를 세계에 경고하기 위해 영어로 집필된 정치·역사 서적이다.

 

80여 년의 시간 차를 두고, 한쪽은 식민주의를 고발하는 정치적 목소리이고, 다른 한쪽은 글로벌 팬들을 위한 문화 소개서이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서가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이 풍경은 어쩌면 오늘날의 한국이 지닌 복합적인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세계에 전하는 다양한 메시지의 집합체를 상징하는 듯하다.

 

역사와 현재, 정치와 문화, 경계와 소통이 맞닿는 그 자리—그곳이 바로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