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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 정동(貞洞)에서 ‘통일’을 그려봅니다.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은 서울 정동(貞洞) 초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동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를 거쳐 한반도를 배경으로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의 진원지 역할을 했습니다. 통일과 나눔은 정동의 공간적 배경을 활용하여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통일의 꿈을 꾸는 ‘정동 통일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동 통일기행’은 세종대로 사거리 인근 통일과 나눔 앞에서 출발하여 조선일보 편집동 건물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기행의 첫 이야기는 조선일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였던 1920년대 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은 좌우합작 운동인 신간회(1927)를 주도하며 갈라진 민족진영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산장려운동(1920) 등 사회 운동에 헌신한 고당 조만식 선생 역시 조선일보 사장을 맡으며 민족계몽에 혼을 다했습니다. 지금의 조선일보 편집동 건물은 해방 직후 옛 서울중앙방송국의 터였고 이 자리에서 1947년 온 겨레가 함께 부르는 통일 노래 <우리의 소원>이 처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정동 기행의 발길은 1898년 만민공동회, 1960년 4.19혁명, 1987년 6.10민주항쟁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대한문, 옛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성공회 서울성당 주변을 거쳐 덕수궁 석조전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석조전은 1946년 한반도의 미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린 장소로 힘없는 약소국의 설움이 그대로 간직된 곳입니다. 아울러 1948년 유엔(UN) 차원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도운 ‘유엔(UN) 한국임시위원단’이 석조전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정동은 역사의 좌절만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배재학당 박물관에서 신식문물과 민족주의 융합 교육 현장에 있었던 서재필, 이승만, 주시경 등 선각자들의 삶을 느낄 수 있고 정동예배당에서 개화(開化)를 부르짖던 청년들의 함성과 조선을 사랑한 선교사들의 헌신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각자들의 도전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세 속 한반도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습니다. 개화의 꿈을 꾸었던 현장들 옆으로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과 1896년 고종 임금이 신변 안전을 위해 피신했던 옛 러시아 공사관 터가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정동의 공간들을 하나 길로 연결 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의 주제는 ‘희망과 절망의 미묘하게 공존하던 개화기’입니다. 정동은 우리 시대 소중한 교훈이자 다음세대와 공유해야 할 문화자산입니다. 


통일과 나눔은 지금 서 있는 정동에서 미래를 고민하며, 평화롭고 창의적인 통일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격동의 현장을 바라보며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