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UN에서 긴박했던 순간
1950년 6월 24일(현지 시간) 트뤼그베 할브단 리 유엔 사무총장은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존 히커슨 미국 국무부 유엔담당 차관보였습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북한의 남침을 알리고 긴급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리 총장은 소집된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의 남침 행위는 유엔헌장 및 총회의 결의를 유린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 때문에 그는 소련의 미움을 사 결국 총장 2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한국전쟁은 유엔이 직면했던 첫 시련으로 안보리가 단호하게 대처한 것은 정당했으며 나의 당시 처신은 7년 재직 기간 중 가장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북한의 남침을 공산주의의 팽창전략으로 인식한 미국은 더이상 묵과 할수 업어 미국은 1950년 6월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그 회의에서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을 9:0 (소련 결석, 유고 기권)으로 채택하고 북한의 38선 까지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불응으로 6월27일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북한의 남침은 UN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북한의 공격을 격퇴시키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한다는 결의안을 찬성 7, 반대1, 기권2 , 결석1 로 채택.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7일에 7:0 (기권 3, 결석 1)으로써 군대와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들이 미국이 지휘하는 유엔군 통합사령부에 집결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합니다.
-장면 당시 한국 유엔대사의 회고록에서-